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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사람을 위한 흥과 장단의 몸짓을 전파하다

이경화


한국무용가 이경화. 지난 9월에 있은 제11회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소고춤으로 대통령상을 받아 화제의 중심에 선 그녀와 만났다. 그녀가 풀어놓은 우리 춤 이야기는 흥겨운 장단과 신바람이 함께하는 우리 춤 한자락이었으며 날이 갈수록 본래의 색을 잃어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안타까운 소회였다. 또한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할 한국춤의 미래이기도 했다.
 

비지정종목으로 받 그녀의 대통령상

지난 9월 12일 열린 제11회 한밭국악전국대회에서 한국무용가 이경화가 ‘소고춤’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무용계에서 아직까지 화제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명무(名舞) 부문의 국가문화재 지정종목인 승무나 살풀이, 태평무 부문에서의 수상이 아닌 비지정종목의 수상이기 때문이다. 비지정종목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 이경화의 소고춤이 처음이다. 또한 이경화 자신이 한국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과 제27호 승무의 이수자이면서도 비지정종목인 소고춤을 선택해 대회에 출전한 것 역시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흔치 않은 일, 이례적인 선택과 결과에 대한 이경화의 답변은 그녀가 우리 춤을 얼마나 아끼는지, 또 우리 춤의 미래에 대한 그녀의 욕심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꼭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전통 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활발하게 보급되거나 조명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런 계기를 통해 좀더 다양한 분야의 전통 춤들이 주목받고 전승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또 저의 중국에서의 활동에도 신명나는 흥과 가락이 어우러진 소고춤과 같은 장르를 통해 한국무용의 가치를 알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이런 장르의 춤에 힘을 실어주는 작업들이 시작되어야겠지요. 저부터라도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이제 소고춤은 그가 중국에서 우리 춤을 알리고 선보이는 데 든든한 매개가 될 것이다. 한국무용 중에서도 유독 빠르고 역동적인 리듬과 신명을 자랑하는 소고춤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중국인들에게 대표적인 한국의 춤으로 소고춤을  선보이고 싶었던 그다. 한국에서의 인정을 통해 당당하게 우리 춤을 소개하고 또한 이 소고춤이 계기가 되어 우리 춤 전반에 대한 이해와 보급의 길이 더 빨리 열리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이번 대회로 든든한 씨앗을 틔운 셈이다.
 

춤으로 시작한 삶, 함께한 어머니와 스승

‘춤은 제2의 신앙’이라는 그녀, 천상 춤꾼이며 춤꾼의 삶을 사랑하고 또한 단 한 번도 의심한 바 없다는 이경화는 처음 걸음마를 배우던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춤으로 반응할 만큼 재능과 열정을 타고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춤을 시작했고, 그 춤이 업이 되기보다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재주 정도로만 누리기를 원했던 보수적인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오랜 단련을 통해 무용인이 되었다.
자연, 나이 50을 넘긴 지금 그녀의 삶과 춤을 시작한 이력은 거의 동일한 햇수를 지녔다. 자각 이전에 돌배기의 몸으로 이미 춤과 함께한 그녀에게 어머니는 평생 함께 춤을 추어준 또다른 그녀다. 딸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길을 열어주었으며,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무용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어머니다. 공연마다 무대 맨 앞자리를 지켜주었던 어머니는 딸이 춤출 때마다 무대 아래서 춤을 추었다. 온몸과 마음으로 무대 위 딸의 손짓 발짓을 그대로 함께하며 딸의 춤을 함께 추어주던 어머니다. 이경화는 지금도 세상을 떠난 그 어머니를 향해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제는 또한 늘 춤이다. “엄마는 내 춤 인생의 노른자위다.” 그이의 말 그대로 그렇게 그의 어머니는 그의 춤 인생을 열어주고 가꾸어온 가장 큰 힘이었다.
그이의 춤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하는 스승들, 그들과의 교류 역시 무용가 이경화의 삶을 독려하고 발전시키며 보람 있게 하는 삶의 요소다. 제자인 이경화와 처음으로 진도북춤 2인무를 추었던 박병천 선생, 장고와 구음을 지도해준 최현 선생, 농악과 길놀음의 흥을 불어넣어준 김병섭 선생, 모두 한국춤의 모든 것을 섭렵한 오늘의 이경화를 있게 한 고마운 스승들이다.
특히, 욕 잘하고 매질도 서슴없던 무서운 스승 이매방은 평생 함께할 고마운 춤의 스승이며 인생의 어른으로 이경화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장단 한자락, 손끝과 발끝으로 만들어내는 소소한 동작 하나라도 맘에 들지 않고 바르다 싶지 않으면 당장 무대 위로 올라가 끌어내리고야마는 호통꾼 이매방. 이경화는 선생의 엄한 가르침과 춤에 있어서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야말로 오늘 자신의 춤을 단련하고 이끌어준 고마운 매였다고 믿는다. 해서 그녀는 지금도 엄한 가르침으로 자신을 이끈 스승 이매방이 손수 만들어준 그 어여쁜 한복을 입고 무대 위에 서는 기쁨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다. 스승에서 제자로 다시 그 제자에서 어린 제자에게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하나하나 일일이 몸으로 전수하는 그 미묘하고도 세심한 내림의 가르침을 통해 이경화의 한국춤은 한국전통의 미덕을 고루 전수받고 체화했다.


유독  ‘우리’를 사랑하는 이유

무용인으로서 이경화의 이력은 화려하다. 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품이춤과 제27호 승무의 이수자인 그녀는 또한 굵직한 국가 행사 때마다 무용 부문의 공연을 맡아왔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개행사 <봄처녀> 안무와 지도, 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공개행사 <등불의 안녕> 안무와 지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당시 <누리북> 안무와 지도 등이 모두 그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 계원예고에서 무용을 가르치며 학생들을 이끌고 해외로 나가 우리 춤을 선보이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많은 해외공연을 치르며 지난 2000년에는 프랑스 디종 국제민속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루 3시간 수면으로 버텨내야 했던 스승의 입장으로 힘겨웠으나 보람 있었던 당시의 공연들은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춤을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를 심어준 행복한 기억들이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춤의 미래를 열고자 한 이경화의 바람대로 그녀의 수많은 제자들이 지금 무용계 곳곳에서 한몫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 이경화는 중국방위과기대학 교수와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객좌교수로 있으면서 그곳 무용을 배우고 우리 춤을 가르치는 중이다. 새로운 학기부터는 무용과 학생만 1,200명이라는 세계적인 베이징무용대학에서의 강의를 준비 중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니 또한 의미있는 시작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가고 있는 이때, 우리 전통문화와 한국춤을 알리는 문화전도사가 되고 싶은 그의 적극적인 바람이 중국에서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해서 대학에서 우리 춤을 가르치는 일은 물론 보다 많은 대중들을 향한 우리 춤 알리기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내년 한중 수교 15주년 기념 공연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한국의 무용과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한 준비가 그것들이며, 공연을 위한 대관 신청과 관계자들과의 교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유독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이경화는 무용인이면서 또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한 문화인이다. 우리 춤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의 머릿속은 늘 ‘어떻게 하면 우리 춤을 살릴 수 있을까’의 생각들로 분주하다. 아침이면 빠지지 않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가 우슈, 태극권, 각종 댄스를 비롯해 중국인들의 다양한 몸 동작들을 기록한다. 우리 춤도 이처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고 믿기에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침마다 계속되는 그의 기록은 우리 춤 보급을 위한 그의 안무노트에 소중한 자료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우리 춤은 자연의 흐름을 따릅니다. 바람, 파도, 꽃과 나비의 움직임과 같은 것, 그것들과 동감하고 함께하는 움직임입니다. 그게 곧 동양미이죠. 선 중심의 움직임이며 자연과 호흡하는 춤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추는 춤이기에 더 내적이며 운치 있습니다. 이 흔한 어깨춤, 이게 우리 춤입니다.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우리 춤이 아닙니다. 손 들어보세요. 자, 이렇게요. 바로 그거예요.”
너무나 무대화되어버린 우리 춤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 한국사람의 흥에 겨운 몸짓, 그게 바로 한국춤이라는 그. 바로 그것, 마음속 흥과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누구나 흥겹게 춤출 수 있는 날들을 위해 우리 춤 안무노트가 항상 머리 속에 더해지고 있다는 이경화는 춤을 통해 우리를 확인하고 춤을 통해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전통문화의 전도사다.
해서 이땅에서 무용을 누리고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았던 이경화의 행복한 춤의 삶은 당분간 중국 땅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먼저 찾아 하겠다는 춤꾼 이경화가 있어 우리 춤의 미래는 오늘 활기차고 내일이 더 밝은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내년 한중 수교 기념 공연과 나아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만나게 될 이경화의 한국춤이 기다려진다.